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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경상도

[통영] 통영 가볼만한곳 / 역사적 의미가 깊은 통영 해저터널

by 토마토는 tomato 2024.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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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해저터널

 


 

해저터널

 

주소: 경남 통영시 도천길 1

 


 

경상남도 통영시 당동~미수동을 연결하는 해저터널
2005년 9월 14일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
1년 4개월에 걸쳐 1932년에 건립한 동양 최초의 바다 밑 터널

 

 

통영의 해저터널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역사적인 유산으로 동양 최초의 바다 밑 터널이다

통영 해저터널은 단순한 교통로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일제 시대의 군사적 목적과 관련이 깊고 당시의 기술력과 역사적 배경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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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터널
통영 해저터널

 

한여름에 방문한 통영의 해저터널

습하고 더워서 밖에 5분만 걸어도 땀이 비오듯 흐르는 날씨였는데 해저터널 근처에 오니 공기가 달라졌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공기가 시원하다 에어컨이 따로없다

땀쟁이는 행복해

 

통영 해저터널

 

통영의 해저터널은 1932년에 완공한 동양 최초의 바다 밑 터널로

해저도로 이용할 연간 교통량 사람 9만인, 우마차 1,000대, 자전거 100대, 자동차 1,000대, 거마 1,000거 추정이었으나

1967년 충무교(운하교)가 개통되면서 해저도로를 통한 차량통행은 금지되었다

지금은 실제로 해저를 통과하는 교통수단으로 쓰이지 않지만 그때의 기술력과 역사적 배경을 엿볼 수 있는 장소이다

현재는 도보나 자전거로 해저터널 이용이 가능하고

해저터널 내부 벽면의 안내문을 통해 통영 해저터널 건설의 역사적 배경 및 공사과정에 대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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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해저터널은 1910년대 일제강점기에 건설되었습니다. 일본 제국은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한국 곳곳에 다양한 군사적, 경제적 인프라를 만들었죠.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통영 해저터널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통영을 중요한 군사 거점으로 삼고 있었고 이 터널을 통해 통영과 한산도를 더 빠르고 안전하게 연결하려 했습니다.

통영은 바다가 깊고 섬들이 많아 수상 교통이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바다 아래를 통과하는 해저터널을 만들어 통영과 한산도를 연결하게 되었죠. 이 터널은 당시로서는 정말 획기적인 시도로, 일본의 군사적 전략을 위한 중요한 시설로 사용되었습니다.

 

 

당시에는 터널 굴착을 위한 기술이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주로 수작업으로 굴착이 이루어졌습니다. 굴착은 물속에서 작업하는 특수한 기술이 요구되었고 터널 내부의 수압과 해저의 지반을 안정시키는 기술도 필요했습니다. 터널을 파는 동안 발생할 수 있는 침수나 지반 붕괴를 막기 위해 보강 작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야 했습니다.

 

 

통영의 해저터널 안을 걸으며 느낀 바는 그 당시에 해저터널 건설이라니,,, 일단 기술력에 놀랐다

하지만 당시에는 현대적인 터널 건설 기술이 미비했기 때문에 해저터널 건설 작업은 매우 위험하고 까다로웠다고 한다

지반 안정성 확보나 침수 방지 등이 어려웠고 그로 인해 터널 공사 도중 사고도 많았다고 한다

통영 해저터널의 건설은 1910년대 후반 - 1930년대 초반, 이 시기는 일제의 강압적인 노동력 착취가 가장 심했던 시기로

일본은 한국 내에서 기술자나 노동자를 강제로 동원하여 각종 군사 기지와 인프라 시설을 건설하게 했다

굴착 작업부터 터널 보강 작업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일을 현지인들을 동원하여 처리했으며 

한국인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면서 높은 사망률과 부상을 겪었을 것이다

통영의 해저 터널은 단순한 교통 시설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당시 한국인들의 피해와 아픔을 되새기게 하는 중요한 역사적 유산이다

 

 

해저 터널을 지나면서 역사적 아픔과 기술적 성취가 공존하는 특별한 장소라는 생각을 했고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며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으면 좋겠다

통영의 해저터널은 역사, 기술, 사람들의 희생이 얽혀 있는 의미 깊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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